<꽃무늬 팬티가 사라진다> 제4회 디지털작가상 입상작
이순원 소설가
권태현 출판평론가
정기훈 영화감독(대표작 ‘애자’)
최석기 MBC PD
박윤후소설가
<꽃무늬 팬티가 사라진다> 중에서
이상한 남자의 출현(1)
1970, 80년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얼굴을 뒤 덮는 커다란 검은 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 그 너머로는 어디를 향해 보고 있는 건지 초점도 불분명했다.
뭉툭한 코와 두툼한 입술 역시도 호감이 가지 않았다.
손질하지 않은 더벅머리에 싸구려로 보이는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고무줄로 된 진 초록색의 추리닝 바지를 입고 다니는 이 남자를 자세히 보면 바지 뒷주머니에도 '이치광'라고 검은색 매직으로 굵게 씌어져있다.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오전 내내는 한가로이 동네를 배회하며 다니면서 젊은 여자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그를 우리는 전부 '또라이'나 '변태'라고 불렀다.
눈은 항상 가라뜨고 땅바닥으로 보고 걷는 게 또라이의 습관이었다.
어쩌다가 그와 몸이라도 부딪힌 적이 있는 처녀들은 살갗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가닐가닐하다 소리를 치고 난리굿을 쳤었다. 마치 징그러운 벌레라도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면서 말이다.
40가구 밖에 살지 않는 이 조그만 위도라는 섬 마을에서 도시에서 갑자기 흘러 들어온 이치광이라는 한 남자의 출현은 나쎄인 동네 아주머니의 입방아를 찧기에도 충분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온 남편과의 점심식사를 마치 구멍가게 앞에 놓은 평상 위에 모여 앉아 떠드는 대화의 주제는 항상 이치광이라는 서울에서 온 남자였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낡아빠진 삼색 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국내산 담배 밖에 팔지 않는 조그만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외제 담배 좀 들여놓으라면서 가게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인다.
결국에는 구멍가게 아주머니 입담을 못 이기고 국산 담배 하나를 사가면서 돈을 건네는 이치광의 손에는 항상 검붉은 색의 염료가 묻어져있었는데 우리들은 미스터리한 남자이기 때문에 어디선가 살인을 저지르고 묻은 피라고 헛소문을 퍼트려서 갖은 상상을 하는 것이 일상의 재미가 돼 버렸다.
"훈아, 너희 누나는 시집 안가냐? 올해로 스물아홉이지?"
"왜? 우리 누나가 시집 안 가면 네가 장가라도 올라고?"
나는 투덜거리면서 새끼 손톱만한 돌멩이 하나를 주어다가 광록이의 이마를 향해 던진다.
"아야!"
광록이의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도윤이가 '킬킬'거리며 웃는다.
나 김훈, 신광록, 양도윤은 삼총사로 위도와는 맞지 않는 열혈 청춘들이다. 나와 도윤이는 불알친구다. 태어났을 때부터 옆집에서 살아온 데다, 부모님들도 같은 학교를 나왔고 이 조그마한 섬 위도를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렇듯 무료한 우리들의 삶에 올해 봄 신광록이라는 생 날라리 같은 놈이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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