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당선작]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실화에 근거해서 쓴 작품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내가 이 일을 겪었던 건 지금으로부터 약 십여 년 전이었다. 월드컵 열기가 광기처럼 전국을 휩쓸던 그때, 나는 무더운 날씨를 견디며 영화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계약금에 일을 다 하고 나서도 잔금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조차 없었지만, 그래도 난 그 일을 해야 했다.
영화를 꿈꾸던 그때, 난 외계인을 만났고 귀신을 체험했으며 좀비와 맞닥뜨렸었다. 그런 일을 겪으며 떠오른 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던 시절에 주워들은 얘기들이었다. 세기말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종이책이 금방이라도 없어질 것 같은 불안감으로 각 문예지들이 이와 관련된 글을 쏟아냈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적이 사라진 이 시대에서 글을 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울 거라고 말이다.
정말로 그렇게 변한 줄 알았다. 적은 사라지고 이제 문학이 가야 할 길은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나서도 우리 주위엔 여전히 수많은 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어쩔 땐 인간의 영혼을 다른 존재에게 팔아버리는 외계인으로, 어쩔 땐 영혼을 읽어버린 채 외계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좀비로 나타났다. 그들의 희생양이 된 귀신들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쓴 작품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일상생활과 관련된 몇 가지 부분은 눈에 띄게 변했을지 모르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외계인과 귀신, 그리고 좀비는 지금도 여전히 여러분 곁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적은 아직도 우리를 노리고 있다.
김형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일대 문예창작과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대한영웅전기』(바로북)를 전자책으로 출간했으며, 이듬해 2009년 한국공포소설특선집 『버그데이』(화남)에 단편 「초상화」가 수록되었다. 2010년 인터파크도서 신인작가 후원프로젝트 수상작으로 뽑힌 단편 「럭키데이」가 『웹진 북&』에 수록되었으며, 같은 해 소설집 『샤방샤방한 나의 스토커』가 교보문고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되었다. 2011년 현재 네이버에 장편소설 『자유로에 귀신은 없다』를 연재하고 있으며, 종말단편집 『종말대환영』(바로북)에 단편 「미래는 없다」가 수록되었다.